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함께 일하며 같은 목표를 바라보고, 같은 길을 걷는 동료였다. 짧지만 노하우와 서로에 대한 믿음은 마치 가족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밤늦게까지 이어진 회의와 때론 승리를, 때론 패배를 함께 맛보던 순간들은 우리를 꽤 끈끈하게 묶어준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세월이 흘러도 이런 추억은 변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문득, 너는 아무렇지 않은 듯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속에 회의감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왜 갈아타버렸을까, 그 이유가 정말 단순히 ‘더 좋은 기회’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몰랐던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궁금증과 실망, 그리고 섭섭함이 뒤엉켜 마음 한구석이 어지럽기 시작했다.

쿨하게 놓아주고 싶었다. “그래, 각자의 길을 가는 게 맞을 수도 있지”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무덤덤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서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내면 깊숙한 곳에서 어딘가 질척이는 감정이 올라왔다. 마치 끈질긴 배멀미처럼, 아무리 달래려 해도 머릿속을 맴돌며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럴 때마다 내가 참 정을 많이 줬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남에게 정을 주고, 그 사람이 떠나간 자리를 확인하는 일은 늘 고통스러우면서도, 그런 경험이 결국은 삶의 자극이 되어준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다. 뭔가를 기대하고, 실망하고, 또 다시 회복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조금씩 단단해지기도 하니까.

그러나 마음 한편으로는 여전히 쿨해지기 힘들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늘 그렇다. 오래된 벗처럼 익숙했던 사이여도, 한순간에 남처럼 느껴지게 되기도 한다. 그 씁쓸함을 맛보는 건 분명 불쾌하고 아프지만, 언젠가 이 경험이 지나고 나면 또 다른 모습을 갖춘 내가 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은 다만, 배멀미처럼 어지러운 감정의 파도를 견디며 흘러가 볼 수밖에.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성숙함이 내게 또 다른 동력이 되어 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