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나를 설득한 게 아니라, 내가 이미 살면서 느끼던 것을 책이 대신 말해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문장은 새로운 지식을 주기보다, 이미 내 안에 있던 감각에 이름을 붙여준다. 읽기 전에는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것을, 읽고 나면 조금 더 선명하게 붙잡을 수 있게 된다.
“존중받으면 좋지만, 반드시 그래야 하는 건 아니다.”
이 문장을 읽었을 때도 그랬다. 처음 보는 생각이라서 놀랐다기보다, 맞다, 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존중을 바라는 마음은 너무 자연스럽다.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내 마음이 가볍게 취급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당연히 있다.
그런데 동시에 세상이 항상 나를 그렇게 대해줘야만 하는 건 아니다. 누군가는 나를 오해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별생각 없이 지나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내가 바라는 만큼 다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무너져야 하는 건 아니라는 말이, 이상하게 위로처럼 느껴졌다.
예전에는 이런 말을 차갑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기대하지 말라는 말처럼 들렸고, 마음을 접으라는 말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게 들린다. 내가 존중받고 싶은 마음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 마음을 세상 전체의 의무로 만들지 않는 것에 가깝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덜 괴로워진다. 누군가의 태도가 나의 전부가 되지 않는다. 누가 나를 제대로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나를 조금 더 붙잡고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그 문장이 좋았다. 대단한 깨달음처럼 다가온 게 아니라, 이미 어렴풋이 그렇게 살고 있던 방향을 조용히 확인해주는 말 같았다.
책을 읽다 보면 가끔 이런 순간이 있다. 새로운 것을 배웠다기보다, 내가 이미 알고 있던 것을 더 정확한 문장으로 만나는 순간. 그런 문장은 오래 남는다. 나를 바꾸기보다,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존중받으면 좋다. 당연히 좋다. 하지만 반드시 그래야만 내가 괜찮은 건 아니다.
요즘은 이 정도의 문장이 나를 덜 흔들리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