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은 준비처럼 보이지만, 가끔은 일어나지도 않은 고통을 미리 사는 일에 가깝다.
생각이 많은 편이라는 말은 꽤 안전하게 들린다. 신중하다는 뜻 같고, 여러 가능성을 보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실제로 생각이 많은 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문제는 생각이 어느 순간 준비가 아니라 반복 재생에 가까워질 때 생긴다.
일어나지 않은 장면을 계속 먼저 살아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어떡하지. 저렇게 말하면 이상하게 보일까. 이 선택이 나중에 발목을 잡으면 어쩌지.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몸은 이미 그 일을 겪은 사람처럼 피곤해진다.
이상한 건 그 걱정이 대부분 정확하지도 않다는 점이다. A가 걱정돼서 한참을 붙잡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B가 일어나고, B까지 대비했더니 C가 오기도 한다. 때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마음은 이미 A의 고통을 한 번 다 치른 뒤다.
그래서 걱정과 준비를 구분해야 하는 것 같다. 준비는 지금 손댈 수 있는 것을 보는 일이다. 확인할 수 있는 걸 확인하고, 줄일 수 있는 위험을 줄이고, 고칠 수 있는 부분을 고치는 것. 반대로 걱정은 가능성만 계속 늘리는 일에 가깝다. 머릿속에서는 바쁘지만 실제로 바뀌는 건 별로 없다.
요즘 이 기준이 꽤 도움이 된다. 내가 지금 무언가를 고치고 있는지, 아니면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상상하고 있는지. 전자라면 계속하면 되고, 후자라면 멈추는 쪽이 낫다. 고치고 있으면 걱정할 시간이 줄어든다. 반대로 걱정만 하고 있으면 고칠 시간이 사라진다.
물론 걱정을 완전히 없애기는 어렵다. 특히 한 번 크게 흔들려본 사람은 더 그렇다. 마음은 자꾸 최악의 장면을 먼저 틀어준다. 그게 나를 지키는 방식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낮은 확률의 일을 위해 지금 100%의 불안을 먼저 겪는 건 너무 비싼 준비일 수 있다.
생각이 많은 사람에게 필요한 건 생각을 더 잘하는 법만은 아닌 것 같다. 어느 순간에는 생각을 행동으로 바꾸는 기준이 필요하다. 지금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하나를 고치고,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더 이상 그 장면을 미리 살지 않는 것.
걱정은 나를 보호하는 얼굴을 하고 오지만, 자주 현재를 먼저 가져간다. 그래서 준비하고 싶다면 더 오래 걱정하기보다 지금 하나를 고치는 편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