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모험은 될 것 같다는 확신보다, 실패해도 시도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는 판단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SpaceX 상장 순간의 일론 머스크 연설을 봤다. 가장 오래 남은 건 성공담의 화려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SpaceX가 성공할 가능성을 10% 미만으로 봤다고 말했다. 거의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시작했다. 이 지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보통은 가능성이 낮으면 멈춘다. 아직 때가 아니라고 하고, 준비가 더 필요하다고 하고, 조금 더 안전한 길을 찾는다. 그 판단이 틀린 건 아니다. 대부분의 일에서는 그게 더 현실적이다. 하지만 어떤 일은 성공 가능성만으로 판단하면 영영 시작할 수 없다.
머스크가 본 건 가능성이 아니라 필요성이었던 것 같다. “이게 성공할까?”보다 “이걸 아무도 하지 않으면 어떤 미래가 사라질까?”에 가까운 질문을 붙잡은 것이다. 그렇게 보면 실패 확률은 여전히 크지만, 시도하지 않는 비용도 같이 커진다.
SpaceX가 단순히 로켓을 더 잘 만드는 회사였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말한 목표는 로켓 회사의 성공이 아니라, 인류가 달과 화성에 갈 수 있는 미래였다. 소수의 우주비행사만 가는 우주가 아니라, 언젠가는 보고 있는 당신도 갈 수 있는 우주.
그래서 “science fiction에서 fiction을 빼겠다”는 말이 강하게 들렸다. 허황된 말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 문장 안에는 방향이 있다. 상상 속에만 있던 미래를 실제 기술의 문제로 끌고 내려오겠다는 태도다.
모험가 정신은 무모함과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조금 다른 것 같다. 무모함은 실패 확률을 못 보는 것이고, 모험은 실패 확률을 보고도 의미를 계산하는 일에 가깝다. 10%도 안 되는 가능성이라도, 그 일이 열어줄 미래가 충분히 크다면 시도할 이유가 생긴다.
이건 꼭 우주 같은 거대한 일에만 해당하지는 않는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도 비슷하다. 글을 쓰는 일, 제품을 만드는 일, 회사를 시작하는 일, 관계를 다시 풀어보는 일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잘될 확률만 따지면 시작하지 못할 일이 많다. 하지만 하지 않았을 때 계속 남을 마음까지 계산하면 답이 달라질 때가 있다.
물론 모든 낮은 확률에 뛰어들 필요는 없다. 낮은 확률 자체가 멋있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그 실패를 감당할 만한 이유가 있는지다. 실패했을 때도 “그래도 해볼 만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일인지. 그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 때, 사람은 조금 더 씩씩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큰 모험은 낙관에서 시작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될 거야”라는 말보다 더 단단한 출발점이 있다. “안 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건 해봐야 한다”는 마음이다.
바늘구멍 같은 가능성을 통과하는 사람은 실패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실패할 수 있다는 걸 알고도, 시도하지 않는 삶보다 시도하는 삶을 택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