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잘 쓴다는 건 더 많은 생각을 대신 맡기는 일이 아니라, 내가 끝까지 붙들어야 할 생각을 구분하는 일에 가깝다.
요즘은 모르는 것이 생기면 거의 바로 AI에게 묻는다. 글을 쓸 때도, 코드를 짤 때도, 어떤 결정을 정리할 때도 그렇다. 예전 같으면 한참 검색하고, 읽고, 비교하고, 틀려보면서 알게 됐을 것들을 훨씬 빠르게 건너갈 수 있다.
이건 분명 좋은 일이다. 좋은 도구는 사람을 덜 지치게 만든다. 막혀 있던 생각을 풀어주고, 흩어진 자료를 정리해주고, 혼자서는 오래 걸렸을 일을 짧은 시간 안에 시도해보게 해준다.
그런데 가끔은 이 편함이 묘하게 불안하게 느껴진다. 내가 빨라진 건지, 아니면 생각해야 할 시간을 너무 빨리 넘겨버린 건지 구분이 잘 안 될 때가 있다.
AI가 대신해도 되는 일이 있다. 표현을 다듬고, 초안을 만들고, 놓친 관점을 보여주고, 반복되는 일을 줄여주는 것. 이런 일은 도구에게 맡겨도 된다. 오히려 맡기는 편이 낫다. 사람이 모든 문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맡기면 안 되는 것도 있다.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보는지 정하는 일. 어떤 답을 좋은 답이라고 판단하는 일. 이 생각이 내 언어가 될 때까지 천천히 씹어보는 일. 이런 것까지 넘기기 시작하면 결과물은 많아지지만, 안쪽은 비어갈 수 있다.
운동과 비슷한 것 같다. 무거운 기구가 있다고 해서 근육이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다. 기구는 무게를 조절하게 해주고, 자세를 잡게 해주고, 반복을 가능하게 해준다. 하지만 결국 힘을 써야 하는 건 내 몸이다. 대신 들어주는 기구가 아니라, 내가 힘을 쓰게 만드는 기구가 좋은 기구다.
AI도 비슷하다. 좋은 AI 사용은 생각을 없애는 쪽이 아니라, 생각을 더 선명하게 만드는 쪽에 있어야 한다. 내가 모르는 부분을 묻고, 받은 답을 의심하고, 내 상황에 맞게 다시 고치고, 결국 내 문장으로 바꾸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 과정이 빠지면 AI는 도구라기보다 대리인이 된다. 내가 고민해야 할 것을 대신 고민하고, 내가 판단해야 할 것을 대신 판단하고, 내가 겪어야 할 시행착오를 대신 치워준다. 처음에는 편하지만, 오래 가면 내가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도 흐려진다.
그래서 AI를 잘 쓰려면 오히려 AI를 쓰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고, 산책하면서 생각하고, 직접 부딪히고, 엉성한 문장을 혼자 써보는 시간. 답이 바로 나오지 않는 시간을 견디는 일. 이런 시간이 있어야 AI가 준 답도 제대로 볼 수 있다.
자기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 AI는 빠른 답을 줄 수는 있지만, 좋은 판단까지 대신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반대로 자기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AI는 꽤 강력한 확장 장치가 된다. 이미 가진 방향을 더 넓게 시험해보고, 부족한 부분을 더 빨리 보완하게 해준다.
결국 중요한 건 AI를 쓰느냐 안 쓰느냐가 아닌 것 같다. 어디까지 맡기고, 어디부터는 내가 붙들 것인가. 이 경계가 흐려질수록 편해지지만 약해지고, 이 경계를 의식할수록 조금 느려져도 단단해진다.
나를 키우는 일은 계속 나의 일로 남겨두어야 한다. AI가 도와줄 수는 있지만,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생각하는 힘도 비슷하다. 빌릴 수는 있지만, 끝내 내 것이 되려면 한 번은 내가 직접 통과해야 한다.